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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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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백호명(춘천고) 개최일 2012-09-03 조회 3085

‘백범일지’를 읽고

 


춘천고등학교 1학년 5반 백 호 명

 

 김 구, 그는 누구인가? 안동(安東) 김 씨 경순왕의 자손으로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창암이고 본명은 창수였으나 구(九)로 개명한다. 1893년 창암은 동학에 입교하게 되고 그의 나이 19살 때 해주에서 선봉으로 어린나이에 동학농민운동을 이끈다. 또, 일본인들에게 우리나라 왕비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을 복수하기 위해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맨손으로 때려죽여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고종의 특사로 곧 풀려난다. 이를 좋게 보지 못한 일본인들이 간섭하자 김 구는 탈옥을 결심한다. 감옥을 나와 속세에 거부하기 위해 승려가 된다. 1909년 김 구는 황해도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신민회에 참가한다. ‘안악사건’ (1911년 안명근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세우고자 자금을 모집하다 검거된 사건)으로 체포되어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 생활을 치르던 중, 이번에는 감형 받아 1915년 출옥하여 시골에서 농촌을 계몽하였다. 시간이 흘러 3.1 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여, 1928년 이동녕, 이시영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항일무력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1932년 일본 왕 사쿠라다몬 저격사건,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 왕 생일 경축식장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을 즉사시킨 사건 등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였다. 1940년 민족주의자들의 단일조직인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김 구가 이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9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본국 상륙훈련을 했다. 1944년 2월, 개정된 헌법에 따라 주석으로 다시 선임된다. 김 구가 이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항복까지 끈임 없이 독립운동을 한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나라를 되찾고 귀국하였지만, 임시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우리나라 정부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으므로 한국독립당의 위원장으로서 모스크바 3국 회의를 반박하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하였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 연합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평양에서 제창한다. 그 후, 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는 중간파의 거두로 있다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이 험난하고도 헛되지 않은 김 구의 삶은 지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할까?
 박지원의 ‘열하일기’,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이 있고 김 구의 백범일지도 그에 속한다. 김 구 하면은 독립운동가로서밖에 인식이 되어있지 않던 나에게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리더의 자질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바로잡기도 하였다. 그의 나이 17세 때, 글을 즐기던 김 구는 경과에 응시하지만 낙방한다. 그러나 그에게 희망을 주던 <마의 상서> 중에 있는 구절이었다.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이것을 보고 그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 또한 느꼈다. 그동안 17년을 살아오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 앞에서만 열심히 하는 척을 했다. 이에 웃긴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겨울, 나는 빙상 장에서 스케이트를 배운 적이 있다.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을 벌려 자세를 낮춘 후 넓은 빙상 장을 몇 바퀴씩 도는 것이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담당 코치 선생님이 보지 않고 계실 때는 쉬고, 나의 쪽을 쳐다보고 계실 때만 열심히 하는 척을 하였다. 이 부분이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한 것이다. 정말 스케이트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꾀부리지 않고 가르쳐주시는 데로 성실하게 배웠을 텐데…….
 고 선생이 하신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고,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여러 패로 갈라져 한 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 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나한테 정말 와 닿고 공감이 되는 어구였다. 학기 초에 선생님께서 자기소개서 쓰는 란에 싫어하는 친구의 모습이란 칸을 만들어 놓으셨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자질하며 나의 이득을 위해 뒤에서 수군거리고 앞에서는 시치미 떼는 모습’이라 적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조금 더 나은 환경, 좀 더 편한 자신의 상태를 위해 힘 있는 세력에 붙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드리고 주체성을 키워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거룩하게 망하는 것과 더럽게 망하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Carpediem : Seize the day!' 라는 문구가 있다. 인생을 즐겨라, 또는 오늘을 잡아라.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이란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므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최선을 다하여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후회 없이 실패하는 것이 거룩하게 망하는 것, 그리고 실패가 두려워서 혹은 실패로 인하여 잃는 것들이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 기회들을 놓치며 실패하는 것이 더럽게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24시간은 인생에 하루하루가 다르니 모든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되 나의 편의를 위해 비겁하게 뒤에서 남을 비판하고 조작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그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단 하나의 목표, 뚜렷한 소망, 그것 하나가 그의 삶을 만들어냈다. 나는 김 구의 삶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나에게도 뚜렷한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30분간 고민을 해보았다. 내가 이 사회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그리고 결정했다. 나는 영어영문학과를 목표로 삼았다. 재밌고 좋아하는 영어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수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영문학과를 나와 정치(외교)학을 배우고 싶다.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도 아직 어린 꼬마아이들을 노예로 삼고 노동을 시키는 나라가 있다. 그것이 모티브였다. 정치외교를 배워 UN, 세계보건기구, UNICEF 등 국제기구를 통해 한국 에이전트로 활약하고 싶다. 지금 근화동 조그마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어린이들에게 기본적인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여 내 미래를 위한 길을 준비할 것이다.
 백범 김 구, 그의 삶은 누구보다 험난하였지만 그 누구보다 나라를 위한 헌신이었고, 일제 강점기라는 힘겹고 어려운 상황 이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그의 리더십은 암울한 시대를 밝게 비추어 주었으며, 17세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백호명에게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해줬던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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