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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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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작성자 김예슬(성창여고) 개최일 2012-07-12 조회 2650

백범 일지

 

 

3409 김예슬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배우기 때문에 수업에 참고가 될 것 같아 백범 일지를 읽게 되었다. 지금은 여러 사람에게 두루 읽혀지지만 원래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인데, 상편은 어린 두 아들에게 유서 대신 쓴 것이고 하편은 동포들에게 전하는 김구 선생님의 독립운동에 대한 활동과 생각을 쓴 것이다. 백범일지와 백범 김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단어들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새롭다거나 흥미롭다,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이 17세에 나보다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을 하신 비범하고 특별한 인물이란 것을 알고 그런 분은 도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에 백범 일지를 읽기 시작했다.
 먼저 김구 선생님의 생애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첫 이름을 창암, 창수 마지막에 김구라고 개명을 했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여 열성적으로 배움을 받았는데 17살 때 조선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93년 18세의 나이로 동학에 입교, 적극적으로 동학 농민운동을 지도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일본군 중위를 살해해 사형을 당할 뻔했으나 고종의 특명으로 감형 된 후, 1898년 탈옥을 한다. 그 후 황해도 장연에서 봉양학교를 설립하는 등 국민을 계몽하고 교화 사업을 벌이는데 힘썼다. 3․1운동 이후에는 상해로 망명하여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으며, 광복 이후에도 민족의 자주 통일과 독립적인 정부 수립을 위해 힘쓰시다 암살되어 생을 마쳤다.
 언제 일본인들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있던 김구 선생님은 두 아들에게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백범 일지를 썼다고 한다. 이 책에는 김구 선생님이 황해도 벽촌에서 ‘상놈’으로 태어나 산골의 서당에 다니던 이야기며 일본이 우리의 왕비를 살해한 직후 분한 마음에 일본인을 때려죽인 이야기, 배움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생각하여 학교를 짓고 사람들을 가르쳤던 이야기, 일본인에게 끌려가 당한 모진 고문, 상해에 건너가 독립 운동을 했던 것, 임시 정부의 주석으로 해방을 맞기까지의 이야기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생애를 서술해 놓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김구 선생님의 생애는 한 편의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이다. 1876년 개항과 함께 태어나 동학의 접주로, 의병으로, 애국 계몽 운동가로, 임시 정부의 주석으로 활동했고, 해방한 후에는 두 동강 난 조국의 통일을 위해 애썼던 김구 선생님의 일대기는 고스란히 한국 근대의 역사책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우리들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온 생애를 겨레와 조국의 자유해방 독립통일에 바치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영원한 스승이시다.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통일되고 자유로우며 높은 문화를 가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전세계 인류와 함께 손잡고 세계평화를 형성 발전시켜 나갈 것을 간절히 소원하셨다.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부분은 김구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적힌 가장 앞부분이었다. 김구 선생님의 집안은 가난한데다 상놈의 내력을 가지고 있어서 토착 양반들에게 천대와 무시를 당해왔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 큰 뜻을 품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자신과 놀던 이생원 댁 아이들이 어느 날 공모하여 자신을 때리자, 칼을 들고 이생원 댁 아이들을 모두 죽일 심산으로 울타리를 뜯고 들어갔다는 일화였다. 결과는 그 집 사람에게 들켜 칼도 뺏기고 더 맞았지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사람을 죽이려고 칼을 들다니. ‘당차고 용감하다’기 보다는 ‘무모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치하포에서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인을 죽인, 일명 치하포 사건에서도 그 일본인이 정말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증거도 없었고 심지어 일본인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는데도 그를 죽였다. 만약 그가 무고한 사람이었거나 조선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인자한 얼굴과 너무도 상반되는 일화들이어서 나는 이렇게 충동적이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 김구 선생님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런 사람도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의 선택 중에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거나 극단적인 것도 있었다. 어쩌면 치하포 사건은 무고한 일본인 한 명을 죽인 살인 사건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김구 선생님의 존재를 알리고 국민들을 깨우는 계기가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법정에서의 태도 때문이다. 선생님은 법정에서 일본인에게 ‘명성황후를 시해해도 좋다는 법이 있더냐, 너희야말로 범죄자다.’라고 호통 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 당시의 사회이다. 일제가 군림하고 탄압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김구 선생님은 일본인에게 호통을 치고 저항했다. 이 호통은 전국팔도를 흔들어 놨고 사람들에게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불의에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그들은 김구를 중심으로 모여서 본격적으로 일본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만약 김구가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김구 선생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독립운동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특별한 활동을 하셨는데 바로 교육이다. 김구 선생님은 어렸을 때 집안에 혼인이 있어 갓을 쓰고 나가신 할아버지가 양반에게 갓을 찢겨 돌아오시자 학문의 필요성을 느껴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교사로도 활동하셨으며 특히 학문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하셨는데, 이 점은 김구 선생님이 서명의숙의 교사로 근무하실 때 한 아이가 부모님께 공대를 하지 않자 그를 별실로 불러 타일렀다는 일화에서 찾을 수 있다. 나중에 이 아이의 부모님이 감동하여 선물을 들고 김구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김구 선생님도 마음이 기뻐서 웃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인성교육보다도 학과교육을 중요시 하다 보니 학생들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잘 판단하지 못하고, 또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반항심에 그른 일을 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이 아이들이 자라 또 다른 교육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자들 역시 인성교육을 올바르게 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그 결과, 요즘 뉴스에서는 폭력 교사, 폭력 학생과 같은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이런 인성교육 부족의 부작용은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본래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 한다. 사회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 관계를 배우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에 가면 오히려 왕따, 집단폭력 등이 문제가 되어 어떤 한 사람은 사회라는 곳에서 아예 고립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 피해자들은 피해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옛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의 목적을 바로 하고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의 기회를 좀 더 많이 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교육을 중시했으며, 또한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셨는데 이렇게 교육을 평가했다. “교육에 관해서는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민주주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에서도 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는 모습에서 나 역시 학생으로서 배움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지도자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정치 상황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 오로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 벗고 나선 지도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한국의 정치를 보며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곤 한다. 왜 한국의 정치는 흙탕물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한국에는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중적인 정치인이 없는 건지 한번쯤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가짐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정치이겠지만 자신을 믿고 뽑아준 국민들의 믿음마저 망각하고 사리사욕 채우기에 눈이 먼 어리석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백범일지를 내밀고 싶다. 백범일지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정작 끝까지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새삼스럽게도 한반도를 사랑한 김구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인 오늘날,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는 전문적인 지식, 능력과 함께 사람을 이끌 수 있는 힘. 즉, 인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오늘날의 지도자는 리더쉽이 뛰어난 사람을 요구한다. 김구 선생님은 남다른 리더쉽을 가지고 한국의 독립사를 이끌어나가셨다는 면에서 현대의 지도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범일지를 읽고 김구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혼란을 이겨내기 위해서 김구 선생님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이해하며 그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난 후 우리의 역사에 이토록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에 감탄과, 그의 비극적인 서거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가장 미천한 신분이던 백정(白丁)과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는 범부(凡夫)의 앞글자를 따 자신의 호를 백범(白凡)이라고 지은 김구 선생님은 자신과 다를 것 없는 평민들이 최소한 자신 정도의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평범한 소시민으로 치부하는 자세에서부터 김구 선생님이 가진 비범함이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비범함은 평범함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백범일지에 나오는 ‘멀쩡한 숟가락을 부러트려 엿을 바꿔먹었다’는 얘기는 김구 선생님도 피해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농민이라는 신분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지 않았다. 신분 상승을 쫓아 학문에 뜻을 품었으나 그마저도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히면서, 김구 선생님은 평등을 찾아 동학에 빠져들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도록 그를 지탱해 주던 것은 오로지 독립을 향한 맹목적인 신념 하나였다. 칠십 평생 독립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독립을 위해 살아가겠다던 김구 선생님의 의식은 분명히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사명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떤 총칼이나 이념으로도 막을 수 없던 김구 선생님의 독립에 대한 열정은 종종 헌신이라는 말로 대신 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구 선생님이 보여주신 헌신은 타인에 대한 봉사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공동의 이익을 위한 헌신이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누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김구 선생의 말씀이 깊은 울림이 되어 내 안에 메아리쳐 돌아왔다. 그 동안 누군가에게 내 책임을 미룬 채 애써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반성과 함께.
 나라가 없고 자유가 없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거친 물살에 직접 부딪히지 않고도 지난 역사가 증명해주는 현실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점점 무뎌져가는 듯하다.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국가를 이루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까지도 망각한 채 살고 있는 것 같다. 국가라 하면 너무 광범위하게 느껴져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라 여기지만 국가는 가정보다 조금 큰 개념일 뿐,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로서 애국이란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사명이다. 당연한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다보니 우리의 애국심도 작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있기에 나라가 존재하고 나라가 존재하기에 내가 있다는 논리가 너무 당연해서인지, 나라를 위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잊고 나를 위해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면서 내 나라에까지 이기적으로 굴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어쩌면 김구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헌신은 그의 절실한 애국심과 다른 이들이 떠넘긴 책임의식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대가 없이 누려온 개인의 안정과 행복은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가 끌어안은 책임과 의지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우리네의 아버지가 짊어지셨던 의지를 이어받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주어진 의무에 충실히 하는 순간 애국은 이미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님은 사상과 이념으로 갈려 서로 대립하는 민족을 한데 묶도록 애쓰며, 민족의 화합을 통해 우리나라에 맞는 문화와 사상이 발전하도록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가는데 앞장서셨다. 하지만, 아무리 숭고한 문화와 사상을 만들어간다 해도 그것을 누리어 가질 국민에게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이 없다면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법. 현재는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통합이 이뤄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물결에 멋대로 휩쓸리지 않도록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져 가는 요즘이다. 바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마치 내일까지만 살 것처럼 혼자 종종걸음치고, 남보다 먼저 가고자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어도 어쩔 수 없이 타인과 보폭을 맞춰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 바로 사람이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은 우리에게 빨리 도착하려는 서두름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필요하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민족이라는 든든한 이름 속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면, 함께라는 이름의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과거의 숱한 시련을 이겨낸 것처럼 눈앞에 어떤 고난이 닥친다 해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김구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에 조심스러운 걸음을 내디뎌본다. 위인의 발자취를 따라 더딘 걸음을 걷다 보면 어느새 그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기에. 그리고 내가 남긴 이 걸음이 또 다시 후세를 위한 발자취가 될 수 있기에.
 책을 덮을 쯤에는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이 경건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평소에 자서전을 읽을 기회가 흔치 않기에 도전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 읽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몰랐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김구 선생님의 업적을 알게 되어서 뿌듯했다. 사실 읽으면서 지루한 부분도 있었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물음을 던지면서 책에 대한 흥미를 갖고 내 생각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또 김구 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돼서 기뻤다. 무엇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를 잊고 사는데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지낼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구나 하는 고마움도 느낄 수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참 좋은 책이다. 역사에 흥미가 없는 사람, 위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 사람, 다양한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21세기에 아직도 우리들이 성취해야 할 문제들은 많이 남아있다. 21세기 주역이 될 우리들이 우리의 민족과 역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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