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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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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 김구의 존경할만만 실천성
작성자 한이슬(남원제일고) 개최일 2012-06-13 조회 2557

백범김구의 존경할만한 실천성

 

 

남원제일고등학교

2223 한이슬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님께서 손수 쓰신 유언 적 자서전으로 김구 선생은,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부의 벽지인 백운방 텃골에서 가난한 농민의 외아들로 태어나셨다. 어릴 적 양반들의 멸시와 가난 속에서도 꿋꿋이 학문에 열중한 김구선생은 과거 응시 과정에서도 부정부패로 하여금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단지 신분이 높고 낮음 그 차이 하나만으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던 그는 그것을 계기로 삼아 현실타파의 개혁정신을 움트게 함으로써 혁명가 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나는 후에 김구 선생님의 비참한 형극 생활을 보면서, 일본에게 빼앗겨야만 했던 암울한 우리 현실에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어떻게 같은 사람들끼리 그토록 참혹한 짓을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속에서도 자신의 사상을 저버리지 않았던 애국선열들의 의지였다.
  만약 그게 나의 일이었다면. 죽음을 앞둔 이 시점에서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시작된 파란만장한 김구 선생님의 일생은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5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이 38세에 경술국치로 일제치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 옥중에서 이름의 ‘거북 구(龜)’였으나 나중에는 ‘아홉 구(九)’ 자로 바꾸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천하고 무식한 사람도 모두 자신과 같이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에서 ‘백정’의 ‘백’, 과 범부의 ‘범’ 자를 따서 호를 백범이라 하였다, 또한 김구 선생님은 국권을 빼앗긴 비극적인 시기에 난파선의 선장이 되어 이 험난한 나라의 앞길을 인도하고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의 평생소원은 해방된 조국에서 완전한 하나의 독립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74세 되던 해에 경교장에서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을 받고 운명하고 마셨다. 일부 사람들은 김구 선생은 그저 혁명가일 뿐 현실적인 정치가는 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효과적인 투쟁의 방법으로 불가피하게 폭력의 수단을 동원한 것일 뿐이며 오히려 참으로 진실한 인간적인 사랑과 자비를 몸소 실천하셨다. 또한, 어렵고 열악한 조건 아래에서 나라를 막힘없이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정치력이나 지도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해방 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던 일과 정치꾼들의 음모에 의해 사망하여 장례행렬에 백만 인파가 따랐다는 사실과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힘써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하는 것을 보더라도, 선생은 진정 이 나라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허벅지 살을 칼로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고 살은 제사장에 올린 효 도심 또한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김구 선생의 삶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 인 거 같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피땀 흘려 조국 광복을 외치던 선조의 노력에 이제는 우리가 보답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애국이라고 해서 꼭 큰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나, 물자를 아껴 쓰는 일도 작은 애국이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행하는 것 또한 애국이다.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나라에 대한 사랑과 백범 김구 선생이 지녔던 조국에 대한 꿋꿋한 그 자부심이야말로 이 시대의 우리가 지녀야 할 요건이 아니겠느냐고 라고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이다. 항상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이 아닌 ‘움직이는 사람 즉 행동하는 사람’ 말이다.  내가 생각한바, 뜻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구선생님은 경외하게 하는 실천의 위인이다. 많은 고통을 이겨가면서 글공부를 했고, 그 지식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바쳤다는 점이 나를 특히 더 존경스럽고 감탄하게 한 부분이다.
  아직도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말이 많고 일본과 연관이 정말 많다. 일본이 교과서에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독도를 다케시마,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를 하고, 우리나라 문화재를 약탈하고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 우익단체가 있는데 천황 추종론자 들이고, 일본이 과거에 했던 모든 일이 사실무근이라고 하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한국의 언어는 자기네 언어와 동일체계에 속한다며 우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전 한국여학생과 여자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성적 학대를 한 일본 놈들이 진실인데 우익단체 놈들은 한국의 위안부들을 매춘부라고 말하고 자신들이 피해자인 척한다. 심지어 우익제품이라는 게 있는데 우익단체에 해당한 기업이 물건을 팔아 나온 이익을 우익단체에 퍼붓는데. 이 우익제품을 팔아서 우리나라의 독도를 빼앗을 자금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익자금을 모으는데 우리도 모르게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캐릭터 ‘키티’, 화장품, 닌텐도 카메라 캐릭터 등등 우익제품인지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귀엽다고 좋다고 주야장천 사대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소수 사람들은 우익에 대해 모르고 있다. 우익에 대해 안다고 해도 “그래도 귀여운 걸 어떡해”, “나 한 명 우익제품 산다고 영향을 받겠어?” 라는 생각으로 결국 미국 교과서에 동해가 일본해라 표기되기도 했었다. 백악관에서 미국 교과서에 일본해라 표기된 동해를 동해로 고치는 투표와 서명운동을 인터넷으로 통해 결정하게 되어서 다행히 우리나라 것으로 표기되었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고 애초부터 동해는 일본해가 아니었고 이런 것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하고 서명운동을 하는 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 이게 우리가 우익제품을 사서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전부터,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동해는 우리 것이다!” 말로면 이렇게 외쳐대고 정작 우리나라를 위해 몸소 실천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니 너무 많다. 나도 이런 말을 쓸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백범 김구 선생님 같은 실천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우리는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사람의 힘은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열 사람이 되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큰 힘을 합쳐 모이게 된다면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나는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김구 선생님 같은 사람이 빨리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타나길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김구 선생님 같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고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게 좋은 생각인 거 같다. 그리고 개인적인 소원일진 모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서로 위하는 시점에서는 지나간 과거를 부정하기보다는 깨끗이 인정하고,  아픔을 가진 사람에겐 치유되는 행동으로 반성한다면 일본도 또, 거기에 맞선 우리 선열들도 화해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벌써 3세대를 넘고 있지마는 일본 후세들이라도 선조에 높은 뜻을, 그리고 희생을 올바른 생각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은 같은 문제로 계속 부딪히고 왈가왈부할 수도 있겠지만, 진실을 떠나서 내가 아니듯 조상의 허물을 정당화시키지 않는 후손들을 만나길 바라면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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