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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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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김가영(함태중) 개최일 2011-06-10 조회 2881

최근 대규모 지진사태나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겪은 일본. 그런 일본을 불쌍히 여겨 구조성금을 보내는 등 도와주기는 했으나 여전히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 일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싸늘하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나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육받은 일본의 이미지는 철천지원수이자 증오의 대상이었다. 어째서? 그 이유를 묻는 다면, 여기 그 사실을 그 무엇보다 잘 알려줄 한 권의 책이 있다.

 
대한민국 필독도서라 일컬어지는 백범일지. 총 상권, 하권으로 이뤄진 김구 선생의 드라마틱한 자서전이다. 이 책에는 당시 일본의 살벌한 핍박과 애국지사들의 피눈물어린 애국심,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의 비참했던 상황이 담담한 문체로 잘 나타나있다. 더군다나 글 속에 녹아든 백범 선생의 뜨거운 나라사랑의 의지는 읽는 이로 하여금 애국심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읽어봐야겠다는 결심만 몇 년 째였던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거룩한 의지를 엿보고자 백범일지를 펼쳐들었다.

 
백범 김구! 오늘날 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귀감이 되는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의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셨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도 학문에 몰두하지만 끝내 과거에 낙방하고 마신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동학에 입문하여 접주로 활약하시는 등 어린 나이부터 세기의 사건에 동참하신다. 그 후 청계동으로 가 선생의 평생 스승인 고능선 선생을 만나 뜻을 키우게 되셨다. 선생은 가르침을 받은 후 청계동을 떠나 방랑하던 중 치하포에서 일본 장교를 국모의 원수라는 명목 하에 맨손으로 처단하신다. 그 일로 붙잡혀 법정에 서게 되시나 시종일관 의연하고 떳떳한 태도였으며, 일본 순사를 호령하여 꾸짖기도 하셨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그러한 선생의 모습에 놀라는 한편 흠모하기도 했다. 선생은 고종황제의 특명으로 사형을 면하시고,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감옥 생활 2년 만에 탈옥을 하신다.

 
탈옥 후 백성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동료들과 함께 신민회 운동에 뛰어들어 백성 계몽에 힘쓰셨으며 안명근 사건으로 한 차례 더 옥고를 치르시고 농촌 계몽 운동을 하신 후 상하이로 망명하신다. 상하이 망명 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경무국장이 되어 본격적인 임시 정부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다.

 
그로부터 13년 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일본의 잔악함과 감시, 그리고 자금난으로 임시 정부는 물론이고 독립지사 개인의 활동도 어려워졌다. 선생은 그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임시 정부의 축으로 자리잡아가며 조국 독립의 의지를 결연히 불태우셨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생과 뜻을 같이 하고자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였다. 선생은 자신을 찾아온 두 젊은 독립 운동가들에 크게 기뻐하며 일본 고위층 인사 제거 작전을 펼치신다. 이 사건은 아직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선생은 일본의 위협에 상해를 떠나 피신하면서도 독립 운동을 멈추지 않으셨고, 마침내는 광복군을 조직해 일본을 몰아낼 준비를 하게 되신다. 그러나 예상보다 이른 일본의 항복으로 결국 우리 손으로 나라를 되찾는 것에 실패하여 선생은 크게 낙담하신다.


선생은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내내 그리워하시던 조국 땅을 다시 밟게 되셨으나 우리나라는 분단국이 될 안타까운 위기에 처해있었다. 선생은 통일 국가를 주장하시며 북한으로 가 뜻을 전하는 등 통일정부를 위해 노력하셨으나 종국에는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통일정부를 보지 못하시고 안타깝게 운명하고 마셨다.

 
첫째 소원도 독립, 둘째 소원도 독립, 마지막 소원도 독립이라 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 선생은 파란만장하다고 해도 모자를 정도로 다사다난한 삶을 사셨지만 그 속에서 항상 빛나는 존재였다. 사람을 이끌어 도리를 내세워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고, 혼자가 아닌 여럿을 위하는 일을 행하여 그 당시에도 많은 존경을 받았고,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다. 어렸을 적부터의 비범함에 놀라고, 그 행동력과 통찰력, 리더쉽에 놀랐으며, 그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에 다시 놀랐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절망하며 주저앉았을 위기와 시련에도 선생은 가슴에 품은 큰 뜻을 이루고자 그것들을 묵묵히 감내하셨다는 것을 느끼고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우리 국민 특유의 저항정신과 애국심을 보노라면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 어디서나, 그 어떤 상황에서나 떳떳함과 고고함을 잃지 않고 나라사랑에 힘쓰던 선생의 모습은 우리나라 국민, 그중에서도 청소년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한편, 선생이 법정에 서셨을 때 국민들의 반응이 참 인상적이었다. 일제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선은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 매우 감동을 받았다. 국민들의 민족성과 애국심을 일깨워 고취시킨 선생과 혹독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가슴 속 뜨거운 애국심을 간직한 조상들이 너무나 존경스러워졌다. 선생의 바람대로 통일 국가로써 발돋움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사랑하는 조국의 같은 민족의 총탄에 눈을 감으신 선생의 마지막에 씁쓸하기도 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수많은 고난을 참고 이겨내 끝내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꽃망울을 열게 되었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세찬 바람이 몰아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른 성장과 눈부신 발전을 보여주며 조상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점점 그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다. 우리 세대의 임무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꽃을 후대와 선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더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으로 피우는 것이다. 꼭 큰 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떳떳할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야하며, 또한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나는 내일 무슨 일로 하여금 애국을 실천할 것인가. 매일매일 반성하며 나를 위한, 더 나아가 나라를 위한 엄숙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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