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알림

association of
commemorative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홈 > 알림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김구선생님의 진정한 리더십
작성자 장동욱(세광고) 개최일 2011-05-06 조회 2345

대지진 참사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고서도 또다시 엄습해오는 여진과 원전의 공포로 슬픔을 추스를 여유조차 찾을 수 없는 일본인들이 안쓰러웠다. 그런 이웃 나라, 일본을 위해 나는 전심을 다해 기도할 수 없었다. 불과 몇 달 전, 중국으로 단재해외유적답사를 다녀왔고, 뤼순감옥에서 우리의 독립지사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던 현장을 내 눈으로 보고 왔다. 한 겨울 대륙의 차가운 바람보다 더 매섭고 차디찬 감옥의 냉기가 뼈 속까지 밀려드는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잔상이 남아서 고통에 빠진 일본을 위한 일심의 기도는 불가능했다. 더구나 재해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나라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았던 우리 국민에게 일본은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왜곡하여 실망을 안겨주었다. 중국에서 답사를 하는 동안 나는 대아(大我)를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지금 일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대아를 위하는 길인지 고민스러웠다. 마침 선생님이 ‘백범일지’를 권해주셨고, 나는 그 해답을 김구선생님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김구 선생님이 53세 때, 상해 임시정부 주석으로 있으면서 아직 너무 어린 두 아들에게 아빠의 지난 행적을 알리고자 써나간 상권과, 중경 임시정부 청사에서 67세부터 이봉창의 동경 의거와 윤봉길의 홍구 의거 등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을 써 나간 하권으로 되어있고, 끝 부분에 ‘나의 소원’이란 장에서 선생님이 원하시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민족국가에 대해 적어놓으셨다.   

 선생님의 일지를 읽고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그동안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던 나의 모습이 허영과 위선처럼 느껴졌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우리는 왜 국가의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나라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진정한 리더를 가질 수 없는지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부끄럽게도 이제야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립지사의 대표적 한 분으로만 생각했던 선생님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온갖 고난 속에서도 전 세계와 조국에 살아있는 민족혼을 알리는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하셨던 민족혼의 초상이자 진정한 정치적 리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학자집안의 자제였을 것이란 나의 예측을 깨고, 몰락한 가난한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궁핍한 생활을 하며 어렵게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다섯 살 때, 자신을 때려주려는 양반집 아이들을 칼로 찔러 죽일 결심을 할 정도로 오기와 승부욕이 있는 아이로 일찍 신분의 부당함을 체험하게 되었다. 과거에 낙방하고 시작한 관상공부에서 자신의 관상이 좋지 못함을 알고서 관상서에 적힌 구절대로 관상보다 더 중요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평등주의를 표방하는 동학에 이끌리게 되고 18세 나이에 최시형으로부터 직접 접주로 임명을 받았다. 다시 스승 고능선을 만나 점차 소아를 뛰어넘어 대아인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게 되었고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 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소탈하게 웃고 계시는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서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왔던 나의 선입견은 선생님이 21세에 치하포에서 국모를 살해한 일본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혼자서 일본 군인을 순식간에 때려죽이는 장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선생님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으며 어린 나이부터 가는 곳마다 군사적, 정신적 통솔력을 발휘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서는 아무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열정적으로 해내고야 말았다.

 선생님은 언제나 선각자로서 깨어있었고, 자신을 유능한 지도자로 끊임없이 변화시켜 가셨다. 치화포 사건으로 감옥에 갔을 때, 그곳에서 신서적을 접하고 낡은 지식과 사상으로 나라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계 각국의 좋은 문화와 제도를 배워 적용하겠다고 생각하고 교육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심지어 다른 감옥에서 만난 도적에게 결사의 비법을 배우기도 했다. 대쪽같이 올곧았던 신채호 선생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정치가다운 면모였다. 선생님은 민족을 독립된 국가의 국민으로 이끄는데 유용한 것이라면 편견 없이 수용하였고,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 등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거사를 이끌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독립 후, 고국 땅에 돌아와서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외세의 세력을 배제한 주체적인 힘으로 민족이 통일되기를 바라셨다.

 책의 말미에 선생님의 국가관을 잘 엿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이론과 사상을 섭렵하시고 좋은 정치제도만을 골라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좋은 제도를 만들어 세계 문명에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국가가 되기를 원하셨다.

 실리주의와 이상주의를 모두 갖춘 리더로서,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청할 정도로 민족이란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가난과 고초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선생님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지도자이셨다. 민족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선생님을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강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18세에 접주로 임명되고 한평생을 굵고 크고 적극적으로 사셨던 선생님을 보면서 19세의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선생님 앞에서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여서 그 큰 자신감과 강인함, 탁월한 리더십을 간절히 물러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제 선생님을 통해 해답을 얻어냈다. 미래지향적인 유연한 사고를 하셨던 선생님도 대전제의 원칙만은 절대로 고수하셨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라고 외친 선생님은 우리의 영토인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명국이 되기를 원하셨고 실리를 추구하셨던 선생님은 자연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인들을 외교적,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셨을 것이다. 독도문제에 대해서 사죄를 받아내면서도 실리를 위해 한일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이 책 속에 살아계셔서 민족의 후손인 나의 눈을 밝게 해주어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선생님의 큰 민족 사랑과 강렬한 리더십은 지금 순간도 계속 되어 우리를 이끌고 메시지를 던져주고 계시는 것이다.

목록
이전글
백범일지를 읽고서
다음글
그의 네 번째 소원, 통일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