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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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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그의 네 번째 소원, 통일을 꿈꾸며
작성자 김은영(백제고) 개최일 2011-05-12 조회 2051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중국 당나라 때의 고전시가의 한 구절은 고3 수험생인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이렇듯 지금의 내 마음은 봄철의 푸른 새싹이 아닌 차가운 눈발만이 날리고 있다. 이런 내게 『백범일지』는 오늘의 힘겨운 노력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힘을 보탤 수 있는 조국을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한국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끓은 뚝배기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독립에 대한 헌신과 열정으로 우리 민족 전체에게 강한 독립심을 불타오를 수 있게 했다. 선생은 일생동안 어느 한순간도 민족과 조국을 잊지 않았으며,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순간들 속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끊임없이 외쳤다. 독립이 된 후에도 분단극복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일생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조국을 위한 삶이었다.

 

 지금 우리가 백범 김구 선생을 위대한 독립지사이며, 민족의 영웅이라 칭하며 배우려는 이유는 그가 이뤄낸 것 보다는 독립과 통일을 위해 온갖 헌신을 바쳤던 희생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감옥과 학교라고 말하고 싶다. 김구선생은는 학교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났으며,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헌신을 포기하지 않는 굳센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가장 김구다운 모습이었다.

 

 치하포 사건으로 수감되었을 때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을 죽였다고 당당히 말하였으며, 국모의 원수도 갚지 않은 상태에서 흰 갓을 쓰고 있는 조선의 관리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리고 수차례 고문으로 인해 온전치 않은 몸이었음에도 신문을 받는 도중 일본인  순사에게 크게 호통을 치는 우리 민족의 강한 정신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백범의 자존감과 민족의식이 알려지면서 당시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백성들이 그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에 감명을 받고 민족적 의식을 본받고자 했다.

 

나 또한 그 당시의 우리 민족이 가졌던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백범의 호통에 일본인 순사가 놀랐듯이, 그 순간 나도 놀랐다. 이제껏 우리 민족이 겪었던 일이었음에도 몇몇의 큰 사건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안에 담긴 우리 민족의 고통과 슬픔을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의 무지함에 대한 부끄러움과 나 지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었다. 그 시대 우리 민족의 고통과 분노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몇 줄의 글을 보며 느낄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안악사건으로 또다시 감옥에 투옥 되어 잦은 심문과 일본인 순사의 매질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오직 조국만을 생각했다. 수감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을 미래를 걱정했고, 출감 후에 겨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수감 중에 바꾼 ‘백범’이라는 호이다. 백정과 범부조차도 자신과 같은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자한 김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후 탈옥을 해 도피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 그가 가진 이러한 교육적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드러났다. 범부의 자식이었기에 서당에 다닐 사정이 안됐던 김구는 아버지에게 사정해 공부를 배우게 된다. 그는 새벽 일찍 일어나 글방으로 달려가 선생님이 오시기도 전부터 혼자 공부를 하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교육에 대한 열의를 품고 자란 김구는 안악에서 활발한 교육활동을 한다. 양산의 학교에서 인재를 키워 조국을 부강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악에서는 해서교육총회를 조직하여 활동범위를 더 넓혔다.

 

결국 그가 한 교육활동 또한 조국을 위한 일이었다. 이러한 김구의 활동 중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김구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에서 숨어 지내면서도 조국을 위한 활동을 계속 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편히 도망을 다니며 타협하는 삶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에 힘썼고 마을 아이들을 모아 훈장노릇을 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도피하면서도 조국을 향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그의 희생정신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일본에게 잡히면 생명을 보장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독립활동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 생명은 빼앗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신은 빼앗지 못하리라!”

혹형을 당해 정신이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로 유치장에 들어가면서도 수감되어 있는 이들의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목청껏 외쳤다. 그의 이러한 열정이 우리 국민들의 광복에 대한 열정을 움직였고 세차게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모진 고문에도, 죽음 앞에 직면해 있어도, 일본의 어떠한 유혹에도 백범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고통이 반복 될수록 그의 정신은 더욱 견고해 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한 일을 대단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 중의 한 사람이며, 자신이 한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 민족 모두가 자신도 조국에 힘이 될 수 있고, 조국의 독립을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을 이끌어 냈다. 그 작은 힘들이 모여 끝내 광복이라는 큰 기쁨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백범이 왜 조국의 민족적인 영웅이라고 불리는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생애가 담긴 백범일지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런 김구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마음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늘 주변에 그를 따르고 돕는 이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김구가 하는 일을 믿고 따라 주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백범 김구가 누군지 물어 본다면 그를 항상 끓고 있는 뚝배기라고 말하고 싶다. 한순간 뜨거웠다가도 나중에는 차갑게 식어버리는 양은냄비가 아닌 은은하게 끓으며 따뜻한 기운이 계속해서 남아있는 뚝배기가 그를 설명하기에 가장 어울린다. 이 같은 저항의지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선생이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의 땅 위에 서있다. 분단이라는 아픔을 수십 년간 겪어오면서 이 땅에는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맴돌고 있다. 비록 백범은 가고 없을지라도 광복과 통일을 향한 그 분의 정신만큼은 아직도 이 땅에 강한 열정으로 남아있다. 이제 땅속에서 꿈틀거리던 김구의 따뜻한 정신을 이끌어 낼 때가 되었다. 우리가 그 마음을 잊어버린 채 많은 시간을 흘러 보냈다. 이제는 우리가 또 한명의 김구가 되어 우리의 후손에게 그 온기를 전해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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