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의지와 신념의 발자취를 따라서 | ||||
|---|---|---|---|---|---|
| 작성자 | 권효준(수기사) | 개최일 | 2012-09-27 | 조회 | 2701 |
|
의지와 신념의 발자취를 따라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정보통신대대 본부중대
한 사람을 알려거든 그 사람이 무엇에 분노를 느끼는지 알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을 드러내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때문에 백범일지를 읽으며 나는 김구선생이 무엇에 분노를 느꼈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사욕만을 채우려는 한 탐관오리에 대한 분노, 국모를 살해한 일본군인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라를 앗아간 일본에 대한 분노까지 김구선생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그는 옳지 않은 것, 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분노하였다. 또한, 그를 위인이라 칭하는 이유는 분노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의지와 신념을 더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백범일지를 읽으며 떠오른 키워드이기도 하다. 부조리에 대한 ‘분노’ , 낡은 제도를 타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한 ‘의지’ , 그리고 그 의지를 끊임없이 이어나가게 한 굳은 ‘신념’ , 이 세 가지가 합쳐져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써 김구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제 그의 일대기를 읽으며 느낀 그의 분노를 이해하고 의지와 신념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한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성인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현상들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스스럼 없이 던진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왜?”라는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당연히 그런 것”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비단 성장해가며 지식이 늘어났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며 현실에 순응해가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김구 선생의 경우는 참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고 생각한 것도 ‘왜 그러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질문했기 때문이다. ‘왜 과거시험에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합리적인 인재등용이 되지 않은가?’ 에 대한 고민은 구한말 부패한 사회현실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나아가 변화를 위해 동학농민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비록 동학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20대 초반의 이러한 경험들은 오히려 그의 사상을 굳건히 해주는 디딤돌이 되었다. 무력투쟁을 통해 사회변혁을 꿈꿨던 그이지만, 강경했던 그의 태도는 동학운동과 의병활동의
백범일지를 읽으며 그의 활동의 기저엔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활동상을 보며 궁금했던 점은 그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힘들고 고된 독립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가?이다. 신념이란 자신이 가진 사상에 대해 흔들림 없는 태도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상’ 이란 것이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그의 일생을 되짚어볼 필요가 생긴다. 보통, 사람들은 학문을 연구하며 견문을 넓히고 사상적 기초를 닦거나, 많은 경험을 통해 내재적으로 가치관이 형성되기도 하며, 특별한 사건을 맞아 일대 전환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구 선생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애국의 신념이 더욱 굳세진 듯하다.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 국모를 시해한 일본 중위 스치다를 국모시해죄로 직접 처단할 정도로 그는 신념에 찬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무력투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이내 교육운동에 투신하였고, 다시 상황이 어려워지자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활동을 이어간다. 다양한 활동중 방법론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애국의 신념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실 청년시절의 신념을 지키기에 인생은 길고 유혹은 많다. 김구 선생도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하며 ‘구국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 는 다짐을 하지만, 그것이 평생이란 기간동안 유지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교육자나 학자로써 일생을 보낼 수 있는 편한 길을 마다하고, 독립운동이라는 힘든 길을 걷게된 것은 각각 상황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김구 선생이 스치다를 처단할 때 추옥생활을 생각했겠는가? 일신의 이로움보다는 단지 나라를 위한다는 순간순간의 판단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신념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속에서 그의 신념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역사에 ‘만약’ 이라는 단어는 없겠지만, 가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조국의 통일, 문화와 사상이 자유로운 문화강국, 그리고 모든 국민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대한민국. 군인으로써 이런 이상향이 실현될 수 있게 나라를 지키고 기반을 만드는 것이 새삼 보람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김구 선생의 인생을 그려보면서 국가와 민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나라에 대한 애정이 담긴 김구선생의 글귀를 인용하며 나의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진정하고 반성함으로써 냉정한 이성을 회복하여 한결같은 민족적 양심으로 정성 단결하여 다같이 자주통일의 길로 총진군 할 수 있는 날에 비로소 이 겨레의 앞에는 통일과 자유의 서광이 비칠 것이다” |
|||||


> 알림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