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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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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작성자 허익선(마석고) 개최일 2012-05-21 조회 2291

<백범일지>를 읽고나서

 

                                                                        허익선

 

‘김구’ 누구나 아는 법한 이름이지만 그의 행적을 제대로 아는 나의 또래는 드물다고 생각한다.물론 나 또한 그랬고 고등학교나 되어서야 백범 김구선생님에 대한 얕은 지식을 쌓게 되었다.
 또한 백범김구선생님을 비롯한 우리나라 독립 열사들의 발자취를 따른 중국탐방과 이봉창 의사 의거 80주년 기념식 등 여러 행사장에 참가하면서 우리나라 독립 투쟁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찾아다니게 되었고 백범일지를 읽게 되었다.
 몰락한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님께서는 17세에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을 하게 된다. 당시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하신 김구 선생님은 과거시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다. 또 자신의 관상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되지만 곧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신다.19세에 동학혁명에 소년 선봉장으로 참여하시고 실패 후에 안진사 댁에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 거기서 안중근 의사를 만나게 된다. 후에 고능선 선생을 만나게 되어 가르침을 받으신다.
  고능선 선생님께서는 김구 선생님이 젊은 시절에 방황을 할 때 ‘나무를 얻어 가지를 잡는 것은 기이 할 것이 없고, 낭떠러지에서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자가 가히 대장부다’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나뭇가지를 놓으면 당연히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하면서 까지 자신의 뜻과 굳은 다짐을 이루기 위해서 망설임 없이 손을 놓는 자 야 말로 진정한 대장부라는 의미인 것 같다. 자신의 뜻을 위해서 죽음마저 감수 할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저 문장은 내게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포기해야할 것들이 많이 생겨나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아.. 이럴 때 가지를 놓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을 위해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  김구 선생님은 어떻게 저 문장을 받아들이셨을까?
 고능선 선생님을 만난 후 치하포사건이 일어나게된다 이곳에서 김구선생님은 우리나라 사람으로 변장한 첩자 쓰치다를 죽이게되고 인천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분부로 형이 정지된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간섭으로 인해 석방을 미루게 되자 결국 탈옥을 하시게 되고 , 마곡사로 가셔서 잠시 스님이 되신다. 25세 이후에는 교육을 중요시여기셔서 교육사업에 전념하시게 된다. 이때 김구선생님 께서는 장련읍 진사 오인형의 도움을 많이 받으시는데 김구선생님은 공립학교의 교원이 되셔서 공립과 사립 두 학교를 발전시키고 유지시키는 데 힘을 쏟으시게 된다. 을사조약 반대 운동 후 김구선생님 께서는 애국 사상을 고취하고 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황해도로 가셔서 농촌 아동들을 가르치다가 한 학교의 교사가 되신다.
 후에 독립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다시 한 번 갇히시고 또 한번의 탈옥으로  1919년 중국 상해로 가셔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문지기라도 시켜달라고 하셨는데, 그때 나이가 44세셨다. 이대목에서 나는 존경심이 생겼다. 그 당시에 44세 나이면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구선생님 께서는 문지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만큼 독립운동에 대한 열의가 있으시다고 생각했다. 남이 보기에는 가장 하찮은 일인 것 같지만 김구 선생님께서는 허영에 탐닉하여 실무에 소홀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직접 그 일을 맡아 하신다고 하신 것이다. 결국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되시지만 과연 우리는 높은 자리를 마다하고 자처하여 나라를 위해 힘든일을 할 수 있을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52세가 되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 되셔서 한인애국단을 만드시고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를 이끄시게된다. 후에 홍커우 공원에서의 윤봉길 의사 의거는 당시 중국의 주석이었던 장제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장제스의 지원을 바탕으로 광복군 낙하산부대를 양성, 출격하기 하루전날 8.15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김구선생님은 대성통곡을 하시게 되는데
일본의 패망에 따른 기쁨의 통곡이 아니라 임시정부와 우리민족, 독립운동가의 기여도가 적다고 판단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해방후 김구선생님은 우리나라로 돌아오시는데 북쪽은 소련군, 남쪽은 미군이 다스리게 된다. 김구선생님께서는 통일국가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남북요인회담이 열리고 남북 지도자 15인이 만나 두 차례 4김 회담이 있었으나 별다른 정치적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또 김구의 평양 방문은 남북분단을 막아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하였으나 결국 북한 정권의 정통성 선전에 이용당한 결과만 낳게 되었다 . 그럼에도 통일을 위해 계속하여 노력하시다가 경교장에서 안두희에 총을맞고 순국하시니 그때 당시 74세 셨다.
 호 백범 , 백정범부 평범한 인간 이라는 뜻의 호를 정한 김구선생님은 내게 더욱 와 닿았다. 그러나 그러한 호를 지으신 깊은 뜻을 얼마나 알까? 백정(소나 돼지를 잡는사람)과 범부(평범한 사람) 들일지라도 자신만큼의 애국심이 있어야 독립을 할 수 있다는 뜻과 함께 자신을 한 없이 낮추셨다.
  몰락한 가문에 미천한 거지의 관상을 타고 나신 김구선생님.책을 읽는 내내 장엄하고 근엄하신 김구선생님의 모습보다는 철부지에 개구쟁이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싸우기도 했고 맞기도 했으며 엉뚱한 생각도 많이 하셨다.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김구의 모습을 배우려한다. 어릴 적 우리와 지극히 똑같은 삶을 살아오고 계셨다. 아니,오히려 더 불우하게 성장하셨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빼고는 크게 내세울 것 없으신 백범선생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큰 업적을 남기셨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김구 선생님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라면 대부분의 분들이 왜 김구선생님을 존경하고 그를 모티브로 삼는지를 알게되었다. 백범선생님 께서는 ‘쟁족’을 강조하셨다. ‘쟁두’가 아닌 ‘쟁족’. 머리가아닌 몸소발로 뛰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에게 정말로 와닿는 구절이 아닐 수 가없다.우리는 과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을정도로 몸바쳐 뛰어봤는가? 과연 우리가 남에게 시킬만큼 스스로가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책을 읽으면서 이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나는 ‘아니’ 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몸소 발로 뛴다면 하기싫어도 위로 올라갈 수 밖에없다. 즉 우두머리가 될 수 밖에 없고 그때서야 비로써 우두머리 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말 한다. ‘말만 번지르르 한 놈’ ‘쟁족’이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치하포 사건’은 ‘쟁족’에 아주 잘 맞는 예시인 것 같다.고능선 선생님께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청에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유학을 떠났고 돌아오는 도중 치하포에서 한 일본인을 만나고 김구선생님께서는 그 일본인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신다.
 김구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닌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내가 남의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않는다고..
정말 마음에드는 말씀이었다. 내가 아팠으니 남이 원하는걸 아프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내가 그당시 사람이 아니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거 같기도 하다.그만큼 힘들었고 끔찍했으니 남도 겪지 않았으면 했겠지만, 나였으면 당한만큼 되갚아주고 싶었을 것 같다.아니 그 이상으로 일본을 더 못살게 굴고 싶었을 것 같다.하지만 김구선생님은 그런 나라는 원치 않으셨다고 하셨다. 아름다운나라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또한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바로 인의와 자비 그리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욕구와 욕심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계몽을 바라기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아름다운 나라 ...김구선생님 께서는 정말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셨고,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능한 사회가 아닌가하는 비판적인 생각이 들기도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결국 김구선생님께서 직접 행돌을 많이 하시지는 않으셨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보았다. 그러나 김구선생님은 인재를 발췌하는 일을 맡아하셨었다. 대표적으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있다. 이봉창 의사께서는 일본의 경찰소 앞에서 직접 폭탄을 던져 일본천황의 마차행렬중에 두 번째 마차에 폭탄을 맞췄다고 한다. 첫 번째 마차에 타고있던 천황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일본의 경찰서 앞에서 그러한 의거를 거행한 배짱과 용기는 내게 큰 충격이 되었다. 또
‘이봉창의사 의거 80주년 기념식’에 갔다온 나는 그에대한 영상과함께 감옥에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보게되었는데 이봉창의사께서는 활짝 웃고 계셨다.나는 그때당시 벅차오름을 느꼈다.
내가 성취한일에 대해 나는 저리도 환한 웃음을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또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는 앞에서 언급한것과 같이 당시 중국의 주석인 장제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는 ‘2억 중국인민이 못해낸 일을 조선인 청년 한명이서 해내었다’ 라고 말하며 경의를 표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김구선생님의 탁월하고 정확한 안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게임을 할때도 한명의 오더(지휘자)가 적 팀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을 해주지 않으면 그팀은 패배에 이르게 된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많은 행동들이 제한되고 위험속에서도 이봉창의사나 윤봉길의사와 같이 대단한 사람들을 발췌해낼 수 있는 안목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잠시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버리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김구선생님의 활동을보고 내게도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백범김구선생님과 독립열사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중국기행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임시정부가 탄생한 동내인 서금로를 비롯하여 마당로 청사,홍구공원, 가흥, 해염, 항주 등을 보았다.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매서운 감시를 받았는지 몸소 느낄 수 있을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또 겨우 수십미터를 사이에 두고도 김구 선생님과 독립열사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한 환경속에서도 독립열사들께서는 꿋꿋하게 독립운동을 이어 나가셨고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분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백범일지’는  김구선생님의 자서전이지만 자신을 치켜 세우려는 책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 우리가 당한 아픔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극복한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과 용기에 대해 자세하게 그려놓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역사를 알아야 다가오는 문제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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