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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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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나라 사랑, 그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작성자 김슬빈(설화고) 개최일 2011-11-05 조회 2125

나라 사랑, 그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20911 김슬빈

 

지금 우리는 평화롭고 안락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위인들이 이뤄낸 결실인 것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위인의 예로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신 백범 김구 선생님이 계신다. 선생님은 일제 치하의 시대에 국가를 위해 동학당에 입문하여 접주로 활동하며 해주성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하셨고, 이후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시다 정착하여 학교를 설립하고 교사로서 활동하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개 연설이나 구국 운동을 벌이셨다. 또 감옥에 갇히는 등 수난을 당하시다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시고 광복 후에는 반탁운동을 벌이셨다. 나중에는 남북한의 통일 정부의 수립을 위해 노력하시는 등 많은 일을 하신 분이다. 교과서를 통해서만 만났던 김구 선생님은, 내게는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왔고 막연하게 ‘아, 영웅이구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김구 선생님은 처음부터 대단한, 그리고 특별한 영웅이었을까?

김구 선생님이 남기신 백범일지에서 만난 선생님은 처음부터 대단한 분은 아니셨다. 선생님은 상놈 노릇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양반에게 혼인의 천대를 받고, 취직의 천대를 받고, 언어의 천대를 받는 집안. 지금이야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 때의 시대 상황으로 봐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유년 시절이다. 남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사람. 백범 김구 선생님은 그렇게 출발하셨다. 시작은 평범했지만 자라면서 배움의 뜻을 갖게 되셨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의 뜻을 꾸준히 실천하셨다.

그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애국심을 발현하는 원동력이 되었는가? 선생님은 20세의 어린 나이에 단독으로 의거하셨다. 바로 치하포 사건이다.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죽인 사건. 물론 그 전에도 의병 활동을 하시긴 하셨지만, 그것은 동학당에 들어가서 접주로 활동하신 일이었고, 이 일은 김구 선생님 홀로 벌이신 일인 것이다. 선생님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순탄하지 않다. 이 일로 인천 감옥에 갇히고, 사형당할 위기까지 겪으며, 탈옥하시고 방랑 생활을 하시다가 계몽 운동을 벌이시는 등 본격적으로 애국 활동을 하시게 된 것이다.

내가 백범 일지를 읽어 내려가며 들은 의문은, 남들과 같은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선생님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애국 활동을 하시며 비범한 인물로 역사에 길이 남으셨냐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선생님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의 집안이 선생님의 애국활동을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선생님이 고위 관리직에 계셨던 것도 아니고, 양반이라는 신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째서?

그렇게 계속 책을 읽는데, 뇌리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김구 선생님이 달랐던 점은 일체 치하에서 망국의 한을 느끼고, 애국심을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던 의지도 가지고 계셨다는 점이다. 백범 일지 본문 중, 이런 구절이 있다. ‘…강성춘에게 나라를 구할 방도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는 나라 망한 책임이 당국자에게만 있고, 자기 같은 시골 늙은이는 관계없는 것처럼 대답했다.…교육의 목적은 인재를 키워 나라를 잘 살게 만들고 어둠 가운데서 빛을 찾는 것이라 말했지만…천주학이나 하라는 소린 줄 알고 피하였다.’ 이 부분에서, 나는 당시 우리나라의 백성들이, 그러니까 사농공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아니 조그마한 생각이라도 깨우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김구 선생님처럼 망국의 한을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다수는 인용문에서 언급된 강성춘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저 시대에 국한된 일이었을까? 광복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변하고, 국민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그리고 국민의식의 변화도 겪었지만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아직도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라 걱정은 국회의원들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라가 망하면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살면 된다는 생각들…. 또, 다수는 애국자는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급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현재 애국심은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가 있을 때에만 반짝 발휘하고 사라질 뿐이다. 나도 결국 특별할 때나 발휘하는 알량한 애국심을 갖고 있는 현대인 중 한 명일 뿐 이었다. 백범일지를 읽는 내내, 김구 선생님은 그런 나를 꾸짖는 듯 했다. 마지막에 수록된 나의 소원에서 선생님은 울부짖고 있었다. 교육의 힘으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 인류가 모두 사모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어떤가? 우리의 애국심, 알량한 그 애국심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사모할 문화를 만들기엔 너무 부족하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특별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도 아니고, 국민이라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마음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나라를 사랑하여 애국지사로 활동하신 김구 선생님도 처음은 그저 평범한, 상놈의 집안 자식인 평범한 우리나라 국민이지 않았는가? 백범일지를 덮으며 드는 생각은, 나라를 위해 거창한 행동을 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는 또 다른 생각은 나라 사랑은 자신이 생각하는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라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나라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알량한 애국심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애국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강성춘’처럼 깨우침이 덜 된 사람이다. 김구 선생님은 백범일지를 통해 깨우침이 덜 된 나를 꾸짖어 주셨다. 그 꾸짖음을 생각하며 나는 알량한 애국심을, 평소에도 발휘할 수 있는 좀 더 강한 애국심으로 바꿔나갈 것이고, 깨우칠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나라 없이는 나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김구 선생님이 100년전 당신의 고향에서 민중들을 향해 외치시던 것처럼, 나에게도 이렇게 외치고 계신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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