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애국심의 명장 김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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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노용후(마산고) | 개최일 | 2011-10-19 | 조회 | 2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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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의 명장 김구
마산고등학교 1학년 1반 8번 노용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실내화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실내화는 새것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커다랗게 써놓아서 아무도 가져가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내 실내화가 없어지자 몹시 당황했다. 그날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고 하루 종일 맨발로 미끄러운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다니며 몹시 화가 났다. 사흘 뒤에 나는 내 실내화를 어떤 3학년 형이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 이름을 지웠지만 내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것을 발견한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감히 내 실내화를 돌려달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바로 눈을 돌려 버렸다. 나는 이미 새 실내화를 샀고, 그것을 빨리 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그 때의 일을 떠올렸다. 실내화 하나 빼앗겼는데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 때의 사람들은 얼마나 화가 나고 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활동하던 사람들도 일제의 심한 탄압 때문에 변질되거나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것은 내가 그 때 3학년 형에게 아무 말도 못 한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님은 뛰어난 용기와 실천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였다. 치하포에서 국모를 시해한 왜놈에 대한 복수로 조선인으로 변장한 채 칼을 품고 다니는 쓰치다라는 왜놈을 혼자서 맨손으로 죽이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치하포 사건으로 김구선생님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고, 고문 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었던 김구 선생님은 심문을 하는 날 자신의 범죄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국모의 시해를 복수의 원인으로 내세우며 관리까지 '이 개 같은 왜놈아!'라고 크게 꾸짖어 심문장에서 영웅이 되고 옥중에서는 왕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존경스러웠다. 이런 무모하기까지 한 결단력과 조선에서의 독립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세우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한 행동력은 소심한 내가 백범 김구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본받고 싶은 점이다. 처음 백범일지를 보았을 때는 딱딱한 위인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 가면서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이 절로 났다. 맞은 게 억울해서 다 죽인다고 부엌칼을 들고 갔다가 실컷 얻어맞고 칼까지 빼앗긴 이야기, 엿장수에게 아버지의 숟가락을 엿과 바꾸어 먹은 일화 등은 '김구 선생님도 어릴 때는 여느 개구쟁이와 똑같았구나'하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김구 선생님이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을 할 때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와 함께 의거를 계획하는 부분이 가장 감명 깊었다. 이봉창 의사가 사건을 일으키기 전 선서식을 거행할 때 오히려 김구 선생님을 위로하면서 "저는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명중하지 못한 것이 너무너무 아쉬웠다. 또다시 윤봉길 의사와 홍구공원에서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 경축식을 할 대 도시락 폭탄을 이용하여 일본인 대장들을 죽일 것을 의논하였다. 이 때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쓴 편지 내용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사건을 일으키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애국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김구 선생님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광복군이라는 군대를 조직하여 비밀 훈련을 실시하였다. 광복군은 처음에 연합국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김구 선생님의 노력으로 연합국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미국 잠수함에 태워 우리나라에 침투시킨 후, 조직적으로 공작하게 하려고 미 육군성과 긴밀히 작전을 짰다. 하지만 한 번도 실행해 보지도 못하고 일본이 항복해 버려서 정말 아쉬웠다. 우리 광복군이 일본군과 싸워 통쾌하게 이겨 버리는 것을 상상하면 더움 화가 났다. 이 책의 끝부분에 있는 '하나님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물음에도 "나의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라는 부분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김구 선생님은 훌륭한 인품과 성실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우리나라의 국적을 버리고 이민을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또, 우리나라보다 복지 제도가 더 잘 되어 있다는 이유로 떠난다고 한다. 아마 김구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셨다면 호통을 치셨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린 사람들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피로써 지켜낸 위대한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35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 그 시간은 우리 민족에게는 정말 혹독하고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기고,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강제로 자기 나라의 군대에 끌고 가기도 하는 등 정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런 암울한 시기에도 희망은 있게 마련이다. 일제의 강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다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지켜내려는 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고, 그들의 활발한 독립 운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립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런 애국지사들의 선봉에는 언제나 백범 김구 선생님이 있었다. 김구 선생님은 뛰어난 용기와 리더십으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이끌었고, 각지에서 벌어진 독립 운동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또한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사건의 배후가 김구 선생님으로 밝혀졌을 때,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체포된 김구 선생님의 겨레에 대한 사람은 그를 '애국심의 명장'이 될 수 있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번에 백범 일지를 읽으면서 김구 선생님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존경심과 감사를 표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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