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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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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온갖 생각이 교차하던 순간
작성자 최혜빈(함평여고) 개최일 2011-06-16 조회 2277

함평여자고등학교 2-1 최혜빈(백범상)

 

내가 어느 특정 인물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그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되기도 한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제로 인해 우리나라가 위태로웠을 때 다른 의사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위해 힘 쓴 김구의 이야기라는 것도 있고, 더욱이 업적만을 설명하는 위인전이 아니라는 더 큰 장점 때문이기도 하다. 더 주목할 만한 점들은 백범일지의 ‘일지(逸志)’는 매일매일 기록한 ‘일기(日記)’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썼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또한 백범일지의 원본이 정비되지 않은 수고인 점과 착오가 많다는 점은 옮긴이의 말처럼 거짓으로 꾸몄다는 느낌보다는 그 난국에서의 집필여건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오히려 김구의 진정성을 보여준 것. 이러한 점들은 내가 김구라는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전반적인 생각을 통째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그저께 선생께서 헤진 옷 속에서 꺼내주신 큰 돈을 받아갈 때 눈물이 나더이다. 일전에 민단 사무실 직원들이 밥을 굶은 듯 하여, 제 돈으로 국수를 사서 같이 먹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돈뭉치를 믿고 주시니 아무 말도 못하겠더이다. …제 일생에 이런 신임을 받은 것은 선생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김구가 이봉창의 일본행에 필요한 폭탄을 주며 1000원 정도의 거액을 준 뒤, 이틀 후 여관에서 김구와 이봉창이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내던 때, 이봉창이 김구에게 한 말이다. 어느 사람은 이봉창의 말을 보고 김구가 너무 사람을 믿는 것 같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의사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그런 면보다는 김구의 사람 보는 안목, 그리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희생정신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김구는 신기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준 첫 번째 대목이다.

또 “정말 이랬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면서도 쇼킹하게 다가온 부분. 109쪽부터 나오는 ‘장발의 걸시승’ 이야기. ‘하룻 밤 새 속세의 만 가지 생각이 다 없어진 듯 해서 중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111쪽에 나와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 113쪽엔 ‘절에는 숨어 있으려고 들어온 것이지, 불교에 일생을 바칠 마음은 생기지 아니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한 뒤 금강산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핑계로 가사와 바리 때, 백미 열 말을 받아 내고, 백미를 팔아 여비를 마련, 경성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난다. 요즘 학생들이 하는 소위 ‘땡땡이’와 비슷한 전개라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부모님과 평양성에 도착하여 여관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모란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최재학과 전효순 덕에 영천암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주가 된다. 장발의 걸시승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구는 승복 차림으로 드러내 놓고 고기를 먹고 염불하는 대신 시를 외웠다. 또 밤에는 대동문 옆에 가서 고기가 든 육면을 먹는 등, 평범한 스님이라면 전혀 할 수 없는 일들로 읽는 내내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아, 정말 김구는 독립운동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이지 나로써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을 위한 희생정신. 아닌 건 아닌 것. 확실하면서도 대범하게 행동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보통 사람과는 다름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부분인데 어찌 안 그럴 수 있을까.

김구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는 유명인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추모하는 사람 중 한명이지만, 불쌍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기에 충분하다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가 있고, 뛰노는 아이들이 있는 평범한 가정보다도. 부모님이 있는 온전한 가정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나와 내 동생보다도.

김구는 18살 때 즈음 집을 나와 자신이 꾸려야 할 가정과 관련된 일들이 평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27살 때 여옥과 맞선을 보고 약혼했으나 병사, 그 다음엔 안중근의 여동생인 안신호와 약혼했으나 곧 파혼. 두 번의 약혼무산을 치른 뒤에야 최준례와 결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한 뒤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탄하고 오랜 시간동안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누릴 수는 없었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일로 비교적 평탄하게 보낸 4년 정도의 가정생활을 제외하고는 혼자 지내거나 지인들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터 이지만 운명은 김구를 가만 놔두질 않았다. 첫 아들 신을 가지기 전에 태어난 2명의 사랑스러운 딸들은 모두 병으로 죽어버렸다. 특히 둘째 딸인 화경은 6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계신 아버지께 마음의 짐을 더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가족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두 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힘겨웠던 결혼, 결혼 후에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 단란한 가정생활. 그리고 두 딸의 죽음. 김구는 국가적 차원의 영웅이었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로써는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닥쳐왔고,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비운의 영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회적으로 드러난 김구의 업적은 대중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으나 정작 김구 내면의 자신은 엄청 고독하고 기댈 곳이 마땅히 없어 외로웠던 인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쇼킹하게 다가온 그의 대단함보다도 정작 김구 자신은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크게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유대감이 깊은 독립운동의 동지라 하여도 아내와 자녀의 역할을 대신 해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번을 계기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위대한 김구는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진 듯 싶다. 대신 한 아버지로써, 한 인간으로써 너무나 고독하고 외로웠을 거 같은 김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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