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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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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나의 삶', 그 이상의 가치
작성자 박해찬(해운대고) 개최일 2011-04-09 조회 2367

이따금씩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보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등. 하지만 이내 별 문제될 사고방식은 아니라며 넘겨버리곤 했다. 나에겐 ‘나의 삶이란 결국 나의 것이며, 나의 삶을 챙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나름의 명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읽는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백범 김구를 포함한 수많은 의사(義士)들의 행동에서는 전혀 그러한 사고방식을 찾을 수 없었다. 개인주의가 유입되기 전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행동에는, ‘나의 삶’,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지로, 책 속의 그 어떤 의사에게서도 ‘나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와 같은 안일한 생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경무총감부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고 나서도, 김구는 오히려 “내 생명은 빼앗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신은 빼앗지 못하리라!”라고 하였고, 기둥에 머리를 들이받기까지 했다. 김구의 어머니도 독립운동으로 어려운 와중에 일부러 생일을 번번이 미루었고, 김구는 아들들에게 “스스로 사회의 아들이라는 마음을 갖고, 사회를 부모처럼 섬기면 더 이상 만족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김구에게 있어 개인적 삶이란 너무나 작은 것에 불과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이것은 나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이다’라며 바로 단념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자른 채 찍은 사진도, 조국이 강점되었다는 소식에 단숨에 하와이에서 내려와 이완용 암살을 시도한 이재명 의사의 사진도, 세상에는 개인적 삶을 희생시킬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추구했던 삶 이상의 가치, 즉 윤봉길 의사가 망설임 없이 폭탄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이봉창 의사가 말했던 영원한 즐거움이란, 도대체 어떤 가치를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독립투사들의 의거를 막연히 여겨 왔던 나였지만, 『쉽게 읽는 백범일지』에서 접한 수많은 목숨의 처절한 희생을 생생히 느끼고 나니, 이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목숨을 담보로 교육을 하고, 군대를 조직하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견뎌냈던 것일까? 혹자는 김구가 보았던 김이언 의병처럼 막연히 ‘원수를 갚기 위해’라고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영웅심리 내지는 군중심리라며 섣불리 단정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요구한 고통은 개인의 명예로도 보상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막연한 명분을 가지고 일제의 온갖 협박과 구슬림을 당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는, 막연히 또는 단순히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을 읽고 나서 다시 곱씹으며, 김구의 여러 행동에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항상 느낄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리 살을 베어서가면서까지 그가 간호했던 아버지, 성품이 험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악습을 고치고자 했던 동산평의 소작인들, 수많은 교육운동을 하고 환등회에서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고 절규하면서까지 깨치고자 했던 그 모든 양반과 상놈들에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향하는 가치가 한 개인의 가치가 아니라, 모든 개인을 위한 가치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소원은 ‘나’가 잘 될 수 있는 소원이 아니라, 민족의 자유와 행복, 나아가 그가『나의 소원』에서 밝혔듯 전 인류의 행복이 될 수 있는 소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모든 의사들의 의거가 막연함에서 큰 의미로 다시 다가온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자 하는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나' 스스로를 위한 개인적 가치 역시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수많은 의사들의 혼은 그 이상을 말하고 있다. 개인적 가치 그 이상의 가치가 없었더라면, 일제강점기때 모두가 '나만이라도' 살기 위해 너도나도 스스로 단발을 하고, 앞잡이 노릇을 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가치의 소중함을 방증한다. 끌려가 신문을 받으면서도 "이놈!"하고 와타나베를 향해 소리친 김구의 올곧은 정신이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었더라면, 오히려 그 누구의 개인적 가치도 지켜지지 못했으리라. 이것이 비단 백범일지가 쓰인 그 당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세상에도, '개인적 삶'만이 존재한다면, 즉 모든 사람이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한다면, 조금의 불안에도 사회가 붕괴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구가 호를 '백범'이라고 고치며 말했듯 백정이나 범부들이라도 마음가짐이 그에 버금간다면, 즉 모두가 개인적 삶의 가치 그 이상의 가치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면, 김구가 소원한 "인류 전체가 의좋고 즐겁게 살도록 하는 것"도 절대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쉽게 읽는 백범일지』속 김구의 행동과 정신은 나 개인뿐만 아니라 지금의 사회 전반에도 많은 의미를 남긴다. 물론, 김구가 지향했던 민족주의가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가치가 아닐까 싶다. 당장의 어떤 일에 대해 개인적 가치를 먼저 챙기는 것이 당연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향하고 있는지. 김구의 이야기는 이렇듯 '나의 삶', 그 이상의 것이 될 만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의 여지를 남긴다. 김구가 치하포 사건 당시에 고민했던 그대로, "내가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거짓이고, 사실은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다시금 돌이켜보며, 김구가 고능선 선생으로부터 평생 교훈으로 삼았던 구절,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가 말하는 바와 같이, 내가 항상 쉬운 길을 택하며 내 삶을 편하게 하는 쪽만 택해오지는 않았나 반성해 본다. 이제는 개인적 가치를 뛰어넘는 궁극적 가치가 세상에 있음을 책 속의 수많은 의사들로부터 깨달았다. 그것이 내게는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고 떠올리며, 내 삶보다 큰 가치를 위해 과감히 희생할 수 있는, 즉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을 수 있는 자세를 지니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는 양반도, 상놈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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