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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립신문 창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9-18 조회 80

[1896년] 독립신문 창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895년 귀국한 서재필은 개화정책을 국민에게 계몽하는 사업이 시급함을 강조하며 정부 입각을 거절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실패의 주요 원인이 민중의 지지가 결여된 때문으로 보고 갑오개혁 성패 여부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고, 신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 갑오개혁을 추진하던 개화파 정부는 개혁정책을 단행하면서도 일본의 방해로 자신들의 신문은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고 수립된 박정양 내각도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재필의 신문 창간계획은 진행될 수 있었다.

정부 예산에서 신문사 설립자금으로 3,000원과 서재필의 개인 생계비와 가옥 임대를 위해 1,400원을 지출하였다. 서재필은 정부가 지출한 자금으로 일본 대판에서 인쇄기와 국문활자, 한문활자, 영문활자 등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정동에 있는 정부 소유의 건물을 사옥으로 빌려 독립신문사를 설립하고 1896년 4월 7일에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독립신문은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일간지로 출발하여 일간지로 발전하였으며, 정부의 매수로 1899년 12월 4일자 [제4권 제278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5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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