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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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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술국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8-01 조회 200
[1910년] 경술국치
 
1904년 8월 일제는 제1차 한일협약을 강제로 체결, 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고문을 재무와 외무에 두도록 하여 재정권과 외교권을 침탈하였다. 나아가 한국 식민지화를 앞두고 열강의 외교적 승인을 얻는 공작에 전력을 기울여, 미국과는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밀약(桂太郎-Taft密約)’을 맺고, 영국과는 8월에 제2차영일동맹을 맺음으로써 양국으로부터 한국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승인받았다.
또한, 러일전쟁의 우세한 전황 속에서 9월에 체결된 포츠머스 강화조약 결과 한국 안에서의 러시아 세력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국제적 승인까지 받아 놓은 상황에서 1905년 11월, 일제는 고종을 협박하고 매국노들을 매수해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은 완전히 박탈되어, 영국·청·미국·독일 등 주한 외국공관들도 철수하고 말았다.
고종은 이와 같은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주권 수호를 호소할 목적으로 1907년 6월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헤이그특사파견 사실을 안 일제는 7월 20일, 통감 이토 히로부미로 하여금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하게 하였다. 이어 7월 24일에는 정미칠조약을 체결, 한국의 내정권마저 장악하였다.
같은 달 27일에는 언론 탄압을 목적으로 한 광무보안법을 공포하여 한국민의 항일 활동을 탄압하였다. 이어서 한국 식민지화의 최대 장애였던 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을 8월 1일부터 약 한 달에 걸쳐 단행하였다.
1910년 5월에는 육군대신 데라우치를 3대 통감으로 임명하여 한국 식민화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할 것을 독촉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달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약을 체결한 후 일제는 한국민의 반항을 우려하여 발표를 뒤로 미루었다. 조약 체결을 숨긴 채 정치 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원로 대신들을 열금한 뒤인 8월 29일, 순종으로 하여금 대한제국을 양도한다는 조칙을 내리게 하였다.
8개조로 된 한일합병조약은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게 넘길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519년 만에, 그리고 대한제국이 성립된지 14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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