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알림

association of
commemorative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홈 > 알림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 선생께서 걸어오신 눈 덮인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작성자 최혜인(수피아여고) 개최일 2011-11-24 조회 2920

<감상문>
 

백범 선생께서 걸어오신 눈 덮인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광주 수피아 여자 고등학교

2학년 1반 35번 최혜인

 

  영롱한 밤이슬이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던 어느 늦은 가을 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한 권의 책이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위인전을 통하여 보았을 법한 한없이 따스하고 인자한 미소. 세상의 모진 풍파는 죄다 겪으셨을 그 분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 지요. 이름 석 자만으로도 제 가슴을 뛰게 하신 이 분은 바로 ‘나의 소원은 첫째도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독립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신 ‘백범 김구’ 선생이십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황해도 해주에서 상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궁핍한 생활을 하셨지만, 배움에 대한 뜻을 저버리시지 않고 험한 고갯길을 넘나드시며 학문에 정진하셨습니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조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일찍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시기도 했지요. 선생께서 남기신 ‘백범일지’를 읽으며 당신이 살아오신 지난 세월 동안 이루어낸 수많은 거사와 운동들에 대하여 좀 더 깊고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연 많고 한 많은 이야기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선생께서 지나오신 그 길목의 끝에 서서 당신이 조국을 위해 바치신 숭고한 희생, 그리고 우리 민족의 슬프고 가엾은 역사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범일지에 담겨있는 수많은 일화들 중에 유독 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선생의 첫 거사입니다. 1895년, 일본인이 한 나라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1년 후, 백범 선생께서는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는 명분 하나로 일본인 스치다를 살해하셨습니다. 스무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어떠한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당당한 기개와 용기로 나라의 치욕을 갚으려 하셨습니다. 살해 사건으로 인해 감옥에 투옥 되었을 때도 순사와 관리들에게 무섭게 호통 치시던 선생의 모습. 당신의 행동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듯이 감옥 안에서 보여주신 선생의 당당함은 제 가슴을 더욱더 뜨겁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선생께서 이루신 첫 거사라서 그랬을까요,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에도 이 일화는 제 머릿속에서 끝까지 맴돌고 있었습니다. 선생이 품으신 그 들끓는 분노와 애국심은 정말 가늠할 수 없이 크셨나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선생의 큰 뜻이나 용기와는 반대로, 참 가슴 시린 이야기가 하나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생께서 감옥으로 이송 되는 도중에 선생의 어머니와 나누신 짤막한 대화입니다. ‘이제 네가 왜놈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물에 빠져 나와 함께 죽자.’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자신은 결코 죽지 않으실 거라던 백범 선생. 세상 어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이리도 가슴 아프고 서글플 수가 있을까요. 이렇듯 모자간의 슬픈 대화를 읽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남겨질 가족들은 생각하지 않고 거사를 치루신 선생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이루어야할 일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제 생각이 참 짧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한 채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던 선생의 마음은 오죽하셨을까요. 그래도 이 한 목숨 다 바쳐 조국을 위해 큰일을 해야겠다는 선생의 뜻. 그 깊은 뜻을 이제 서야 헤아릴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선생의 그러한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나라를 가지고 살아갈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저를 울린 백범 선생의 또 다른 일화는 바로 선생께서 윤봉길 의사와 함께 나누신 ‘마지막 인사’입니다. 선생께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시고 한참 후에 ‘한인애국단’을 창단하시어 활동하고 계셨던 1932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윤봉길이라는 한 청년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도 거사를 치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백범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중국 홍커우 공원에 폭탄을 투척할 거사 계획을 세우게 되었지요. 거사를 치루게 된 당일,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 길을 떠나기 전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저는 이제 1시간 밖에 더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6원짜리인 자신의 금시계를 2원짜리인 백범 선생의 은시계와 맞바꾸셨지요.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아도 윤봉길 의사의 한마디는 저를 자꾸만 울게 만듭니다. 애써 담담히 시계를 건네시고 그 시계를 받으시며 목 메인 목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라고 말씀하시는 두 분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 일화는 참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인데, 저 역시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등학생이 되어 나이를 먹고,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더 이 이야기를 읽으니 예전에 느꼈던 감동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마냥 ‘멋진 위인’이라고만 생각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 짤막한 대화 속에서 느낀 제 감정의 비통함과 애잔함은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큰 것이었습니다. 뜻을 품은 채 자신의 길을 나아가려는 한 사람과 같은 뜻을 품고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한 사람. 거사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당신들의 그 엄청난 용기와 나라에 대한 사랑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백범 김구 선생은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과 함께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수많은 거사와 그에 따른 수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고, 이렇듯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범 선생이 살아오신 시대의 길을 쭉 따라 걸어 와보니, 저는 지금 현재 제가 살아가는 시대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문제와 동해 표기 문제,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 등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국사 교과서는 마음대로 왜곡하여 개정하는 정부와 우리나라의 고유음식인 김치가 세계의 음식점에 ‘기무치’라고 표기 되어 가고 있어도 별다른 관심조차 갖지 않는 국민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고통으로 이루어낸 우리의 독립이고 되찾은 우리의 나라입니다. 내 것을 빼앗기면 미친 듯이 분노하며 싸워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너무나도 무관심하고 무기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성해야합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지금보다 더한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은 저희보다 몇 배는 더 강하셨습니다. 조국을 탄압하는 일제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우셨고, 끊임없이 거사와 운동을 도모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분들에 비하면 나약하고 비겁한 방관자일 뿐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 이것은 백범 선생께서 쓰신 시입니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은 후세의 자손들이 따라 걸을 길이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들은 더욱더 나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애정을 가슴에 품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의 희생과 그 분들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은 될지언정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맙시다. 백범 선생께서 걸어오신 당당하고 힘찬 그 길을 따라 우리 역시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발자국을 남겨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백범 선생과 함께 눈 덮인 추운 길을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걸어가고 있습니다.

목록
이전글
인류를 위한 희생과 봉사
다음글
백범일지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