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잊어서는 안될 역사, 김구 | ||||
|---|---|---|---|---|---|
| 작성자 | 천지영(삼천포중앙) | 개최일 | 2011-05-19 | 조회 | 2255 |
|
얼마 전 한 친일파 작가가 김구는 살인마고 유관순은 여자깡패, 김좌진은 산적떼 두목, 이토 히로부미는 세계적 영웅이라고 하여 법원에 고소되었으나 무죄로 판결났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 친일파 작가를 미친 매국노라고 말하며 막 흥분하였다. 그런데 그 때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흥분을 할 줄만 알았지 왜 김구 선생님이 살인마라는 소리를 듣는지 반박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김구 선생님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김구선생님에 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한국사를 잘 하고 한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까지 역사공부를 하며 김구 선생님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정작 김구 선생님에 관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 동안 수박 겉핥기 식 역사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백년 도 채 되지 않은 미국의 역사책은 두께는 손가락 한 뼘의 두께인데, 5000년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역사책은 손가락 한마디의 두께에 불과하다. 우리의 국사책에는 김구 선생님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나라를 역사를 바로 알고 일본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우리나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김구 선생님에 대해 바로 알고자 책의 첫 장을 펼쳐 들었다. 김구 선생님도 어린 시절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부모님께 바른 교육을 받으며 자란 덕에 곧게 자랄 수 있었다. 그 때 쯤 할아버지께서 양반으로부터 상놈이 말총갓을 써서 호되게 혼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과거에 합격하고자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후 김구 선생님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준다는 동학에 입도하고 농민 봉기활동을 했다. 내가 백범 김구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무엇보다 와 닿았던 것은 김구 선생님이 관상을 보고 나서 하신 생각이었다. 만약 내 관상이 김구선생님처럼 천하고 흉하게만 나왔다면 나는 큰 상실감에 빠져서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김구선생님은 책에 나와 있는 “얼 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긍정의 힘이 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스무 살이 되던 어느 해, 김구 선생님은 허리에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를 지켜 본 김구 선생님은 그가 우리의 국모, 명성황후를 죽인 놈 중의 하나가 틀림없다는 생각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고 싶어서 그를 죽이고 당당하게 잡혀 들어갔다고 했다. 이것이 오늘 날 김구 선생님이 살인마라고 오해를 받는 이유인데 나도 이 사건은 오히려 그 용기와 애국심을 칭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원수라 하더라도 살인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수를 갚았다는 것은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또 김구 선생님은 재판장에서도 재들에게 호령을 하며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김구 선생님은 같은 감옥의 동료들에게는 글을 가르쳐주고 먹을 것이 들어오면 같이 나누어 주며 소송 장을 대신 써주는 것과 같은 따뜻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셨다. 이처럼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김구 선생님을 보며 왜 김구 선생님이 진정한 지도자이고 인자인지 알 수 있었다. 김구 선생님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고종이 특별히 사면해주었고, 얼마 뒤 감옥을 동료들과 함께 탈출하였다. 한편, 김구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실력과 독립심을 키우는 것만이 위태로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생각하셔서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으시기도 하셨다. 김구 선생님께서 양신학교에 계실 때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황해도 일대의 애국자들이 모두 체포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김구 선생님께서는 왜놈들에게 고문을 받으면서 우셨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거듭 씹어대는 저 왜놈처럼 밤새워 일을 해본 적이 몇 번 이었던가?’라는 부끄러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고 한다. 몸이 고통스러우면 아무 생각도 없어진다고 하는데 그 상황에서도 나라를 위해 밤 새워 일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것에 너무 놀랍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 후 일본 천황의 죽음으로 형이 감형된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밤낮으로 세상에 나가 무슨 사업을 할까만 생각하셨으며 징역을 사시면서도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을 때 언젠가 독립정부를 세우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문도 잘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하여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셨다고 한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독립이 된다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다면 하찮은 일들도 기꺼이 하겠다고 하시는 김구 선생님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 지도자들이 보고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 후 김구선생님은 국무령이 되셨다. 이봉창 의사가 일왕 히로히토를 저격한 사건과 윤봉길 의사가 일왕의 생일에 경축식장에서 폭탄을 던져서 일본의 고관들을 중상을 입힌 사건들은 우리나라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모습을 전 세계에 알렸다. 마침내 일본이 항복하고 우리나라는 독립이 되었다. 하지만 그 독립이 우리가 일본에게 받아낸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의 독립은 반쪽자리 독립이었다. 그래서 김구 선생님은 독립을 기뻐하기 보다는 둘로 나뉘어 소련과 미국의 손아귀에 각각 들어가게 된 나라를 안타까워하며 남과 북의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을 아무도 따르려고 하지 않았고 끝내 김구 선생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김구선생님께선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걸 원하신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하셨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하셨다. 그렇게 평생을 나라를 위해 자유와 사랑을 위해 산 김구 선생님을 감히 살인마라고 하고도 제대로 된 반박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건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백범일지를 읽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역사에 너무 무지하고 무관심했다는 게 너무 속이 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속상하다. 요즘 사람들이 모두 글로벌이라고 외쳐 되고 있다. 하지만 그 글로벌이라는 것도 자기 나라 역사, 자기 뿌리를 제대로 알고 있을 때 비로소 실현 될 수 있는 것이다. 백범일지를 시작으로 모두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백범일지를 읽고 반성하며 김구 선생님의 삶을 닮아가려 한다면 김구 선생님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나도 김구 선생님처럼 나 자신보다 여럿을 위해 살아가고 늘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꿈꾸며……. |
|||||


> 알림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